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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초식공룡의 교과서 이구아노돈

공룡박사 2022. 2. 12. 01:26

이구아노돈의 개요

이구아노돈은 이구아노돈과에 속하는 공룡의 일종이며 쥐라기 말에서 백악기 초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에 이르는 많은 종들이 이구아노돈속으로 분류되었지만 21세기 초의 분류학 개정으로 잘 알려진 한 종에 기반하고 있다. 버니사르텐시스는 약 1억 2천 6백만 년 전 벨기에 독일 영국  스페인에서 백악기 전기부터 초기 압티기 초기까지 살았으며 아마도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살았을 것이다. 크고 덩치가 큰 초식동물이었는데 큰 엄지손가락 스파이크는 포식자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먹이를 찾을 수 있는 긴 잡는 다섯 번째 손가락과 결합되어 있다. 이 속은 1825년 영국의 지질학자 기디언 맨텔에 의해 명명되었지만 윌리엄 하딩 벤스테드가 영국에서 발견된 화석 표본을 바탕으로 발견했고 종명 I. enclikus로 명명되었으며 이구아노돈은 화석 표본에 기초하여 메갈로사우루스에 이어 공식적으로 명명된 두 번째 공룡이고 메갈로사우루스 그리고 히라이오사우루스와 함께 공룡을 정의하기 위해 사용된 3개 속 중 하나이다. 이구아노돈속은 오리부리 하드로사우루스와 함께 이구아노돈티아과에 속한는데 이 속의 분류는 새로운 종의 이름이 지어지거나 오랫동안 다른 속에 재분류되면서 계속 연구 주제가 되고 있다. 1878년 벨기에에서 훨씬 더 완전한 유적이 발견되어 루이 돌로에 의해 연구되었다. 이들은 새로운 종인 버니사르텐시스로 명명되었다. 21세기 초에 영국에서 발견된 화석들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없는 4종의 다른 종들에 속한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 후 만텔리사우루스 바릴리움  하이셀로스피누스로 분리되었다. 또한 원래 노돈의 모식종인 앵클릭쿠스가 노멘두비움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과노돈이라는 이름은 벨기에 표본에 기반하여 잘 알려진 종을 중심으로 굳어졌다. 2015년에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발견된 화석을 바탕으로 두 번째 유효한 종인 I. galvensis가 명명되었다.

 

이구아노돈 화석 출처 : 나무위키

 

노돈의 화석

화석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서 노돈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해 왔다. 잘 알려진 두 개의 뼈 층에서 나온 거의 완전한 골격을 포함한 이 속의 수많은 표본들은 연구원들이 먹이 움직임과 사회적 행동 등 살아 있는 동물의 많은 측면에 대해 정보에 입각한 가설을 세울 수 있게 해주었다. 과학적으로 잘 알려진 최초의 공룡 중 하나로서 공룡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서 작지만 주목할 만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공룡 유적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따라 예술적인 표현이 크게 변화했다. 노돈의 발견은 오랫동안 인기 있는 전설과 함께 해왔다. 기디언 맨텔의 아내 메리 앤은 1822년 남편이 환자를 방문하던 중 영국 서섹스주 쿠크필드 화이트맨스 그린의 틸게이트 숲 지층에서 이구아노돈의 첫 이빨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만텔이 환자를 볼 때 아내를 데리고 갔다는 증거는 없다. 게다가 그는 1827년에 맨텔 여사가 나중에 이구아노돈이라고 이름 붙여진 최초의 치아를 발견했다고 이전에 진술했지만 1851년에 스스로 치아를 발견했다고 시인했다. 다른 후기 작가들은 이 이야기가 확실히 거짓은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 만텔이 1820년 화이트맨스 그린에 있는 채석장에서 큰 화석 뼈를 처음 획득했다는 것은 그의 공책에 의해 알려져 있다. 수각류 이빨도 발견돼 육식동물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처음에 부분 골격으로 결합하려는 이 뼈들을 거대한 악어의 것으로 해석했다. 1821년 만텔은 초식성 이빨의 발견을 언급하고 지층에 큰 초식성 파충류가 존재할 가능성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822년 출판된 사우스 다운스의 화석 에서 그는 이빨과 그의 불완전한 골격 사이의 연관성을 감히 제시하지 못했으며 그의 발견이 두 가지 큰 형태 즉 거대한 크기의 도마뱀 부족의 동물이라고 가정했다.

 

1822년 5월 그는 초식성의 이빨을 런던 왕립 학회에 처음 제출했지만 윌리엄 버클랜드와 같은 회원들은 이를 물고기 이빨이나 제3지층에서 나온 코뿔소의 앞니라고 일축했다. 1823년 6월 23일 샤를 리엘은 파리에서 열린 소이레에서 조르주 퀴비에에게 코뿔소를 보여주었지만 유명한 프랑스 박물학자는 코뿔소의 것이라고 일축했다. 바로 다음날 쿠비어가 철회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엘은 이 문제에 대해 다소 자신감이 없어진 맨텔에게 해임만을 보고하였다. 1824년에 버클랜드는 메갈로사우루스를 묘사했고 그 때 만텔의 컬렉션에 초대받았다. 3월 6일 유골을 본 그는 이 유골들이 어떤 거대한 사우리아인의 것이라는 데 동의했지만 여전히 초식동물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텔은 다시금 이빨을 쿠비에에게 보냈고  쿠비에르는 1824년 6월 22일에 이빨이 파충류이며 거대한 초식동물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다. 쿠비에는 그 해 오스멘스 포실레스의 신간에서 그의 초기 실수를 인정하여 과학계에서 만텔과 그의 새로운 사우리아어를 즉시 받아들이게 되었다. 맨텔은 현존하는 파충류들 사이에서 현대의 유사점을 발견함으로써 그의 이론을 더욱 입증하려고 노력했다. 1824년 9월 그는 왕립 외과 대학을 방문했지만  처음에는 비슷한 치아를 찾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보조 큐레이터인 새뮤얼 스터치베리는 그것들이 비록 20배는 더 길었지만 최근에 그가 준비한 이구아나의 것과 20배는 더 길었지만 말이다.

 

복원의 역사

맨텔의 이구아노돈은 메이드스톤 맨텔로돈 유적을 바탕으로 복원되었다. 등축 척도에 기초하여 그는 이 생물이 메갈로사우루스의 12 미터 길이보다 더 큰 18 미터정도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이구아나 사우루스였지만 그의 친구 윌리엄 대니얼 코니베어는 이구아나가 이구아나에 더 적합하기 때문에 더 나은 이름은 이구아노이데스 또는 이구아노돈일 중에서 제안했다. 1829년 프리드리히 홀이 이항법을 만들기 위해 특정 이름을 추가하는 것을 무시했지만 나중에 I. Aniclicus로 수정되었다. 이구아노돈트 화석은 1834년 메이드스톤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만텔리사우루스로 분류되었다.맨텔은 화석 생물체의 이름을 정한 지 몇 주 후인 1824년 12월 지역 포츠머스 철학 협회에 자신의 발견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12월 17일 모임에서 회원을 대상으로 낭독되었으며 12월 20일 월요일 햄프셔 텔레그래프에 이과나돈 의 철자가 잘못되었다는 보고서가 실렸다.만텔은 1825년 2월 10일 런던 왕립 학회에 유해에 대한 논문을 제출하면서 공식적으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834년 켄트주 메이드스톤에 있는 채석장에서 비슷한 동물의 더 완전한 표본이 발견되었고 맨텔은 이를 곧 얻었다. 그는 독특한 이빨에 기반을 둔 노돈으로 식별하기 시작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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